학미의 세계5 / 2019.2.25


표현은 경쾌하게 경계를 뛰어넘는다

학생미술전(이하 학미)은 기술이나 규범에 구애 받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경험 또는 자신과 마주한 사회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아이들의 자기 결정’의 장이다.

표현은 본래, 자신 이외의 타인과는 공유할 수 없는, 일반화시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율적인 감각과 생각에서 솟아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미의 도공(図工)· 미술 교사는 아이들의 표현이 결정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그리고 그 결정을 즐기고 존중하며, 온 힘을 다해 도우려 동분서주하는 하인이다.

 

아이들은 자기 결정권을 가진 인간이지만 아직 미성숙하기에, 보호 받으며 어른의 관리를 받는 약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자기 결정은 항상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아이들이 ‘관리’ 받아야 마땅한 미숙하고 약한 존재인가 싶어 도공 · 미술 수업을 진행하며 사소한 일에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표현하는 아이는 당당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위엄이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결정한다. 그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표현은 어른을 혼란에 빠뜨리며 여러 가지 의문들을 들이댄다.

‘관리’라는 말을 간단히 부숴버리고 만다.

아이들의 자기 결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학미의 작품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댄다. ‘우리 학교’에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가지각색의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표현은 연령이나 입장,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살아있는 새와 표본의 새≫

제47회 학생미술전 우수상 조호쿠조선초급학교 6학년(당시) 류상태 

 

박제된 새에 친근감을 느낀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에 있어, 새의 박제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우리 학교에는 공화국에서 보내 온 박제가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의 학교에도 눈에 띄는 어딘가에 박제가 장식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검고 튼튼한 나무 줄기의 주위에 배치된 13마리 표본의 새들은 박제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고 풍부한 표정과 함께 생동감마저 느껴진다. 오히려 나무 위의 살아있는 3 마리의 새는 적적하게 외로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푹신푹신하게 그려진 나뭇잎이 하늘의 구름처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둥지 옆에 까마귀의 모습이 정처 없이 초연해 보여 우습다.

 

 

≪너는 나≫

제41회 학생미술전 우수상 기따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 중급부2학년(당시) 추미야

 

너의 마음이 너무 보인다

너에게는 나의 마음이 너무 보인다

말하면 말할수록 싫어진다

‘나’의 의미도 사라지고

그것을 찾을 자유도 사라진다 

네가 나를 없애버렸다

 

작품의 뒷면에 적혀 있던 시이다. 심장 같은 것을 먹고 있는 것은 '나'인 걸까. 아니면 먹히는 쪽이 '나'인 걸까. 먹는 쪽도 먹히는 쪽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덩어리로 보인다.

여기서의 ‘나’는 작가의 자아를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감상자인 ‘나’를 의미하는 것일까.

 

 

≪까마귀의 역습≫

제42회 학생미술전 특별금상 교또조선중고급학교 중급부3학년(당시) 리종해 

 

압도적인 조형이다. 중앙심사장에서 처음 본 순간, 이 작품은 그 자리에서 나를 덮쳐 눌렀고, 귀에서는 날카로운 이명이 들리는 듯 했다.

세 개의 태양은 환일(幻日)이라 불리는 자연 현상 일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솟은 수목들. 난립하는 나무들의 상부는 까마귀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형체를 바꾼 동료인 걸까. 선도하는 자와 귀를 기울이는 자. 화면의 모두가 심상치 않은 공기를 내뿜고 있다.

 

 

재일조선학생미술전람회 중앙심사위원

기따오사까초중급,오사까후꾸시마초급,교또초급학교 미술도공강사 김명화